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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잡담

파리 오를리공항의 역사


오를리공항의 상징, 7번 국도와 남(Sud/南)청사.

A. 개요

한국에서 프랑스 파리로 여행시에는 모든 비행이 프랑스 파리 드골국제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파리에는 공식적으로 3개의 국제공항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파리 오를리국제공항입니다. (IATA. ORY / ICAO. LFPO)
규모로 치면 프랑스 2위이며, 승객수송에서도 프랑스 2위, 유럽 1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2009년에 2500만명의 이용객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현재 노선들은 대부분은 국내선과 북아프리카 노선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항은 크게 두개의 청사로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남쪽청사와 서쪽청사로 나뉘고 있습니다. 그리고 3개의 활주로가 있습니다.
여객청사들과 함께 정비구역과 화물구역이 있습니다. 현재 Aéroports de Paris (ADP)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또한 고밀도 주거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없는 공항이기도 합니다.

B. 지리

오를리공항은 파리에서 약 14Km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대는 평원으로, 롱부와이오 (Longvboyau)평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도는 88m로 그리 높지 않습니다.서쪽으로는 작은 동산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으며, 동쪽에는 평원이 세느강 유역으로 인해서 갑자기 경사가 생깁니다.
평균온도는 1월에 약 + 4°C에서 팔월에 19°C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북쪽으로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를 볼 수 있습니다

C. 오를리공항의 역사

1. 오를리공항의 시작

Viry-Châtillon (비리 샤띠용)이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었던 Port-Aviation (포르 아비아시옹)이 현재 오를리공항의 전신입니다. 예전에는 이 비행장에서 유럽 대부분의 항공계 미팅이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오를리공항이 위치하고 있는 롱부아이요 평원에는 농작지역이였습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후 포르 아비아시옹의 비상활주로가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파리지방에 있었던 1910년 대홍수때에, 포르 아비아시옹의 이용이 불가하자, 비상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 당시에는, 찾기가 쉽다는 장점을 이용해서, 연합군의 비상용 비행장으로 사용했습니다.

1918년 1월 1일날, 프랑스 국방성에서 약 1헥타르의 부지를 롱부아이요 평원에서 매입하고 주기장을 설치하고, 첫번째 행거를 설치하게 됩니다.  이 이후로 롱부아이요는 Camp d'aviation d'Orly-Villeneuv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직역하자면 오를리-빌눼브 비행장이라는 이름입니다. 1918년 3월 31일, 1차대전 도중에 미군이 비행장에 미군비행장을 설치합니다. 그와함께 프랑스의 민간물류업체인 SEGA가 오를리공항에 정착하게 됩니다. 미군의 물자를 관리하는 곳이였습니다.

2. 1차대전 이후

1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해군을 위한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됩니다. 비행정을 위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행거 2개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비해정들은 독일이 패전국임에 따라서 보상조치 중에 하나로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개의 비행정은 지중해상공을 비행하던도중 실종되게 됩니다. 그 이후로 행거들은 일반 항공기들이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공항 북쪽에는 이미 민간공항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또한 민간공항과 함께 여러개의 비행학교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항공계 미팅을 많이 개최하였다고 합니다.

Fichier:Aérodrome d'orly 1926.JPG
오를리 비행장 당시 사진

2차대전이 시작하고, 오를리공항은 독일 공군인 Luftwaffe에 의해서 폭격받게 됩니다. 독일의 프랑스 점령 후 독일군의 군공항으로 이용당하게 됩니다. 연합군의 폭격기에 의해서 엄청난 폭격을 받게 됩니다. 1944년 8월 23일, 프랑스의 대부분의 지방 해방 후 미공군이 오를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 때에 오를리공항의 구 타워가 건설됩니다. 현재도 꿋꿋히 서 있고, 볼 수는 있지만, 버림받은 상태라고 합니다.

3. 2차대전 이후

1945, ADP가 창설됩니다. 이 회사는 파리지역의 공항들을 관리하고 운영할 임무를 받게 됩니다. 1946년 11월 7일, 미공군은 프랑스에게 공항 운영권을 다시 반환합니다. 승객을 위한 임시 청사가, 구 타워 옆에 건설되었으며, 2100m의 3개의 활주로가 건설됩니다. 1948년 북(北)청사가 건설되었습니다, 현재는 철거되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부르제공항이 파리의 대표관문이였습니다. 당시 파리 에어쇼는 오를리공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Fichier:Ancienne tour TA23 Orly.jpg
오를리공항의 구 타워

1947년 프랑스 해군이 오를리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1950년에는, 마지막 에어쇼를 개최하게 됩니다. 또한 파리 지방에 새로운 민간공항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자, 프랑스 정부가 신공항을 추진하게 됩니다. 에어프랑스는 1952년에 부르제공항을 떠나서 오를리공항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와함게 파리 에어쇼는 부르제공항으로 떠나게 되었지만요. 1952년에는 약 120만명의 승객이 이용을 하였고, 부르제공항에 비해서 두배를 뛰어넘는 수치였습니다. 1954년 프랑스 해군은 다시 떠나게 되고, 오를리공항은 완벽한 민간공항으로 자기매김하게 됩니다.

1960년대 말에는, 오를리공항은 파리의 5분의 1일이라는 엄청난 부지에 자리잡았으며, 행거의 총 면적은 15 600m²였습니다. 당시에는 유럽에서 제일 규모가 큰 공항이였다고 합니다.

4. 남(南)청사

남청사는 195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서 1960년에 준공이 되었습니다. 1961년 2월 24일 드골장군에 의해서 준공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내부시설들이 상당한 시대적 쇼크를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공항 확장에 대비하여서 공항 옆 부지를 프랑스 정부에서 하들이기 시작합니다. 이와함께 프랑스 7번 국도는 오를리공항 남청사 밑으로 지나가게 됩니다.

1960년대 말에, 오를리공항은 프랑스인들의 관광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쇼핑센터가 자리잡았으며, 영화관도 들어왔습니다. 남청사는 프랑스의 현대와 사치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자리잡게 됩니다. 1963년에는 300만명의 관광객으로 들렀으며, 에펠탑보다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관광을 하였다고 합니다. 1965년에는 관광객만 400만명에 다다르는 빠와를 보여주게 됩니다.

남(南)청사 전경

비행시설면에서는 1953년에는 레이더가 설치되었고, 1957에는 VOR가 설치되었습니다.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서 1965년에는 600만명의 승객이 오를리 공항을 이용하였고, 1969년에는 900만명이 이용하게 됩니다. 이론상 오를리공항의 수용가능인원수는 450만명인 것을 안다면, 엄청난 오버트래픽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하여 제 4활주로를 착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파리 외곽지역이 차차 주거지역으로 탈바꿈에 오를리공항에 비행금지시간이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1968년부터 시행하고있으며, 비행금지시간은 23시30분부터 아침 6시까지 입니다.

5. 1970년대

Fichier:Tour Orly.JPG
서(西)청사 / Orly Ouest 

수요증가에 따라서, 파리 서(西)청사를 1967년에 착공합니다. 준공은 1971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에는 공항의 구조가 특이하였는데, 2층은 출발층이였고 1층을 도착층이였습니다. 이 것은 새로운 시도였으며, 현재 공항설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南)청사도 같은 방식으로 수정되게 됩니다. 서청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수의 증축공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부지가 차차 모자르게 되고, 확장을 더 할 수 없게 되자, 프랑스 정부는 1974년 파리 드골국제공항을 준공하게 됩니다.

또한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오를리공항은 수많은 테러의 표적이 됩니다. 이 짧은 기간동안 5개의 테러가 일어나게 됩니다.

6. 1990년대 ~ 현재

1991년에 Orlyval이라는 열차가 준공됩니다. 앙토니역과 오를리공항의 연걸을 임무로 맡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자동화열차로서, 현재 같은 모델이 Rennes공항, 뚤르즈 공항과 미국 그리고 드골공항에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1992년 당시에는 오를리공항은 프랑스의 관문이였고, 드골공항은 장거리 노선이 약간 있는 소규모 공항이였습니다. 하지만 에어프랑스는 허브를 드골공항으로 잡게 되고, 마스터플랜을 잡게 됩니다. 이 플랜은 바로 드골공항은 연계허브로 사용한다는 것이였는데, 성공적인 플랜이였고, 차차 프랑스 공항의 주도권은 드골공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또한 드골공항의 비중이 오를리에 비해서 커지자, 프랑스정부는 드골공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따라서 오를리공항은 차차 국내선과, 북아프리카 노선에 힘을 쏟게 됩니다. 에어프랑스는 국내선 셔틀노선을 운영하게 되었으며, 낮은 가격으로 많은 수의 이용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대대적은 청사와 시설, 활주로 개보수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서청사는 2006년에 공사가 끝이나고, 2008년에는 유도로의 구조가 수저오디게 됩니다. 도착과 출발의 트래픽은 완전히 분리되게 수정되었고, 청사 내에는 상업시설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